우주에서 낚시하며 무엇을 기다릴까

이한나 기자, 매일경제, 17 Juli 2022

그림 구석에서 홀로 낚시하는 어두운 존재. 텅 빈듯 하얀 롤러코스터가 화면을 가득 채웠는데 그 존재에 자꾸 눈길이 간다. 롤러코스터 레일은 무한대 기호(∞)를 연상시킨다. 광활한 우주 속에 분홍 꽃이 가득차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공상과학(SF)소설의 한 장면 같은 이 유화는 독일 작가 필립 그뢰징어(50)의 'Loop quantum gravity'(202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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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시아 첫 개인전 'Why So Serious?(왜 그리 진지해?)'가 서울 삼청동 초이앤초이갤러리와 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라운지에서 8월 25일까지 열린다. 신작 회화와 색채 드로잉 40여점씩 총 80점을 선보인다. 일견 요즘 MZ세대가 좋아하는 팝아트 장르같다. 하지만 우주나 바다처럼 광활하면서도 어두운 공간에서 불안한 존재들이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유령을 연상시키는 외로운 존재들이 양팔을 벌리고 있다. 불안한 돛단배를 타고 광활한 바닷가에서 풍파와 싸우는 위태로운 존재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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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그뢰징어, Loop quantum gravity, 2022, Oil on canvas, 145x160cm <사진제공=초이앤초이갤러리>

 

극지방을 탐험하는 모험가와 괴이한 기계 구조물, 무지개 같은 스펙트럼이 자주 등장해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 등 다양한 양식이 섞여 있는 모양새다. 오일이나 아크릴물감, 파스텔, 스프레이 페인트 등 다양한 재료로 알록달록 화려하게 표현되는 색깔에서 배어나오는 우울감이나 절망의 정조가 복합적이다. 옛 동독에서 영국 출신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와 모국을 그리워하던 어머니의 우울감을 목격하면서 외동으로 자라났다. 17세때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큰 사건을 겪고 과도한 낙관주의에 사로잡혔던 세상의 기억도 그림에 녹아있다.

사진설명필립 그뢰징어, Mount Pendragon, 2022, Oil on canvas, 200x170cm <사진제공=초이앤초이갤러리>

 

한국에 오자마자 판문점부터 달려간 작가는 "임진각과 판문점에 서 보니 어릴때 분단의 기억, 알 수 없는 긴장된 분위기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며 그 기억을 빨리 그림으로 담고 싶어했다. 작가 그림 속에는 밝은 존재와 어두운 존재가 함께 나타나 탄생과 죽음 등 양면성을 보여준다. 양팔을 뻗는 존재들도 내보내거나 놓아주는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잡기 위해 뻗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또한 삶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동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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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그뢰징어, The thin red line 1&2, 2019, Oil on canvas, 200x170cm <사진제공=초이앤초이갤러리>

 

초이앤초이갤러리에서는 'LONELINESS'란 주제로 고독과 외로움이 어떻게 다른 생명력의 원천이 되는지 보여주는 작품을 모았다. 호리아트스페이스와 아이프라운지에서는 'CURIOSITY'를 주제로 인간적 감성의 첫 출발점인 호기심이 자유로운 해석과 흥미로운 재미를 선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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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가 필립 그뢰징어가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본인 작품 앞에서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다. <이한나 기자>

 

스테판 베르크 본미술관 관장은 "우주공간은 작가에게 현실세계의 제약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며 "안정적인 기반을 잃어버린 세상을 그리는 그뢰징어의 작업도 복잡한 코드와 은유적 상징들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함을 논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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