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앤초이 갤러리 서울은 3월 7일부터 4월 26일까지 조니 아브라함스(Johnny Abrahams)의 개인전 <낮은 수풀 속, 늑대는 숨어있다(The grass is three inches long, the wolf can hide)>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한국에서 여는 3번째 개인전으로, 미니멀리즘적 추상을 통해 ‘관계성’을 표현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형태 너머의 깊이를 감각하도록 하는 아브라함스의 작품세계를 보다 심층적으로 보여준다.
조니 아브라함스의 작업은 기하학적 추상의 정교한 구조 속에서 회화적 물질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형식적 구성에 머무르지 않고, 회화 행위를 기록하는 물질적 흔적이자 시간의 응축된 순간으로 기능한다. 유화의 능선과 골짜기는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작가의 손길과 의도를 담아내며, 표면에 각인된 붓질은 특정한 순간을 고정하고 그 감각을 보존한다.
그에게 물질성은 단순한 회화적 기법이 아닌 필수적인 조형 요소다. 아브라함스는 치밀한 형식적 언어 안에서도 물질성을 통해 회화의 즉각성과 감각성을 강화하며, 기계적이고 차가운 구조 속에서도 온기와 존재감을 불어넣는다. 특히, 황마(hessian)라는 재료를 통해 부정(negative) 공간과 긍정(positive) 공간 사이의 균형을 조율하고, 그 위에 얹힌 물감은 빛을 머금고 반사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표면을 형성한다.
그의 작업에는 물질과 빛의 근원을 향한 형이상학적 관심이 스며 있다. 아브라함스는 별의 내부에서 원소가 생성되는 과정, 거대한 중력과 압력으로 단순한 원소들이 결합해 더 복잡한 물질로 변하며, 이 과정에서 빛이 방출되는 원리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는 이를 자신의 회화와 연결 짓고, 물질이 형성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은유적으로 화면 위에 구현한다. 그에게 있어 회화 행위는 ‘해체되는 순간(Dissociation)’으로, 자아가 희미해지고 행위만이 남는 상태에서 숭고한 경험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일본 민속학자 야나기타 쿠니오의 ‘한 문장 이야기(One Sentence Story)’에서 따왔다. 단 하나의 문장이지만, 그것을 ‘이야기’라고 부르는 순간 독자는 그 너머의 서사를 상상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인다. 아브라함스의 회화 역시 최소한의 형식적 언어로 구축되었지만, 그 안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균형과 긴장, 정지와 움직임이 공존한다. 그가 창조한 시각적 언어는 단순함을 넘어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형식 너머의 깊이를 감각하고, 숨겨진 서사를 발견하는 여정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