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앤초이 갤러리는 베르트람 하제나우어 (1970년 오스트리아 출생) 의 개인전 《거울 자아》 를 개최한다. 조각가로서 작업을 시작한 작가의 작품은 고전 회화 장르에 대한 현대적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강렬한 색상의 대비와 미세한 그라데이션을 통해 회화적 공간을 창조하는 작품들은 회화의 한계를 시험하고, 관객이 작품을 접하는 방식에 초점을 두어 실험적인 전시 관람을 유도한다.
하제나우어의 초상화는 주로 패션 잡지에서 찾을 수 있는 이미지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특히 전후 소비주의 문화의 과잉과 허영을 잘 보여주는 9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 슈퍼모델들의 이미지를 수집하여 콜라주로 재구성한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번복하여 이미지의 본래 맥락을 완전히 벗겨낸 후, 그 형태를 다시 한번 사진으로 포착한 다음 캔버스에 옮긴다. 현란한 아이콘들의 과장된 겉모습이 사라지며 드러나는 것은 작가가 말하는 ‘형상의 본질’, 즉 존재성 그 자체이다. 해체와 정제로 대상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구체적 요소들이 점점 더 추상화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작가의 초상화 시리즈뿐만 아니라 소재의 겉모습이 기본적인 형태로 간소화된 정물화와 풍경화 시리즈에서도 잘 나타난다.
현란한 상업 이미지의 강제적인 유혹을 걷어내고 보면, 좀 더 미묘하지만 원초적인 매력이 드러난다. 하제나우어의 작품 속 모델은 보는 이의 눈을 피해 얼굴을 돌리고, 또는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시선으로 관객을(혹은 그 뒤 무언가를) 응시하며 자신이 알려지는 것을 거부한다. 은첨필(silverpoint)을 사용하여 캔버스에 섬세하게 새겨진 인물 또한 한 형태로 머물러 있지 않고 배경의 어두운 심연에서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유혹의 손짓에 홀린 관객은 마른 목을 적시려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가지만, 결국 갈증을 풀지 못한 채 멍하니 남겨진다. 작가의 작품은 자신의 일부를 보여주지만 결코 그 모든 것을 내어주지 않으며,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그 무언가를 갈취하고자 하는 인간의 핵심적인 욕망을 이용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접힌 자국이 난 종이를 묘사하는 일련의 신작을 함께 선보인다. 이 작품들은 유년시절 친구와 가족, 자신의 옛 모습, 또는 이미 지나간 세대를 살았던 다른 이들의 오래된 사진을 발견하는 경험을 연상시킨다. 종이가 접힌 자국은 작업의 섬세한 구성에 질감과 깊이를 더하여 시적인 표현을 심화시키고, 종이 위 남겨진 주름 한 점 한 점은 다층의 기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새겨진 자국에 담긴 시간 속 순간들은 그 안에 내제된 다양한 서사를 암시한다.
추억과 향수의 모티브는 미지의 영역에 다가가고자 하는 작가에게 또 다른 돌파구를 제공한다. 향수의 주관적인 렌즈는 과거에 관한 우리의 기억을 각색하여, ‘객관적으로 있었던 일’ 따윈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있었다고 믿는 일’이 현실이 된다. 따라서 회상을 시각화 하는 이 작품들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미지의 것을 정복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결국 자기 자신을 무지에 몰아넣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제나우어의 작업에 중심이 되는 주제는 이러한 욕망과 미지의 끊임없는 순환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우리를 유혹하는 사이렌 소리 같다. 전시된 작품들은 관객을 유도하여 인간의 모순을 드러내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 상태에 대한 고찰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