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They, them, and them: Group show

4 September - 19 October 2024

초이앤초이 갤러리는 9월 4일부터 10 월 19일까지 <그, 그들 그리고 그들> 단체전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소수자의 위치에 놓인 ‘그들’의 삶을 다룬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들 만의 연대를 형성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며 소수자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가치관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냅니다.  

 

참여작가

차연서

오인환

이해민선

이시마 

전나환 

박승혁 

성재윤 

이우성 

오용석 

 

 

제1막: 정체성

 

창문을 통해 내부가 보이는 전시장 1층에는 오인환(1965-) 작가의 철판 글자 ‘나는 하나가 아니다’(2018)가 빛을 내며 관객들을 맞이한다. 사회의 내부 구성원이면서 외부인이 되기 쉬운 존재들은 소외층이라는 명명 안에 그들 만의 연대를 형성한다. 정체성의 다층적이고 유동적인[1] 성질이 한 줄의 글로 편집되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은 가시화되지 못한 어떤 삶을 더듬으며 전시장의 내부로 들어오게 된다.

 

오인환 작가 옆으로 박승혁(1992-) 작가의 철재에 분체 도장한 상자들이 놓여있다. 다른 모양을 하고 같은 이름을 가진 사물과 다른 이름을 하고 같은 모양을 가진 작품들은 오인환 작가의 화두를 이어간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는 집단의 소속감을 위해 개개인의 모습을 은폐하고 있지 않은가. 기능을 단순화하고 확대한 박승혁 작가의 조각은 차이로 인해 탈락하고 탈색되는 개인을 뭉뚱그려 포섭한 공동체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계단을 올라가기 전 관객은 오용석(1974-) 작가의 ‘살로메: 푸른 수염’(2012)을 마주한다.  살로메는 성경에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잘라 접시에 담아 서빙 하는 모습의 악인으로 묘사되었다. 그녀의 손에 희생된 남자들을 상상하며 그린 파랗고 창백한 얼굴들은 실체 없는 희생자에 대한 종교적 기제를 암시한다. 권력과 결속력을 지켜내기 위해 타인을 배척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하는, 소수자 정체성의 이면에 자리잡은 기득권의 면모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제2막: 관계성

 

계단을 올라오면 전면에는 오용석 작가의 ‘포르노그라피의 앵글’(2007)이 있다. 8~90년대의 하드코어 포르노 장면을 차용하는 작품에는HIV/AIDS 바이러스에 인해 수많은 동료와 연인을 떠나보냈던 시대의 그림자가 겹친다. 상실은 공포의 분위기에서도 공동체와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다지고, 혐오와 배제에 맞선 언어와 태도를 길러냈다. 감염과 죽음에 대한 공포 앞에서도 욕망과 결속을 선택했던 그들의 낭만이 작품에 묻어 있다.

 

차연서(1997-)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후 법의학 책에 실린 여러 타인의 죽음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터무니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공동체 안에서 개개인의 죽음은 곧 '우리'의 죽음으로 느껴지며, 그 관계성 안에서 죽음은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는다. 전시된 일련의 신작은 법의학 책에서 동성애가 언급되는 색 정사 기록을 활용하였으며, 이를 통해 소수자 공동체의 죽음과 그 안의 연대를 탐구한다.

 

전나환(1984-2021) 작가의 거인들(Cyclops 시리즈, 2016)은 근육질의 몸과 민소매 티셔츠를 걸친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HIV/AIDS 확산이 불러온 또 하나의 현상은 건강하고 마초적인 겉모습에 대한 집착이었다. 이상적인 모습을 추구하며 서로 닮아져 가는 커뮤니티의 현상은 오늘도 쉽게 볼 수 있고, 작가는 이러한 실태를 스텐실을 사용하는 복제 기법을 통해 유머 있게 표현한다. 그들 앞에 그들을 가로막는 장애물, 사회적 차별이 쌓여 올라간 산이 있다. 하지만 거인들은 사회적 장벽 따위는 엉덩이 밑으로 깔아뭉개며 정복한다. 나를 조롱하는 자들을 역으로 조롱하는 소수자만의 유머를 보태며 차별 앞에 굴복하지 않고 지탱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살펴보게 한다.

 

성재윤(1999-)은 트렌스젠더 남성으로서 남성성을 연구한다. 테이프로 가슴을 가리고 바다 앞에 선 작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관객에게 전하는 ‘커밍아웃’으로, 작가의 소수성, 그리고 작가와 자신의 몸 사이의 복잡한 관계성을 세상에 알린다. 커밍아웃은 한 번의 행위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동의 없이 남들에게 알리는 이들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타인에게 나를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수많은 불편한 관계들 앞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작가의 작업에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싸우는 그들의 서사가 담긴다.

 

이시마의 ‘비단감옥’(2채널 비디오. 2023)은 그들 사이, 그들과 사회, 또는 그들 자신과의 관계 속 끊임없이 생기는 불협화음을 퍼포먼스로 풀어내어 영상으로 보여준다. ‘비정상의 떼 안에서의 정상을 향한 열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욕망하기만 하는 유령들’[2]의 몸짓이 작품에 담겨있다. ‘비단’이 상징하는 설계된 체계 속에서 설계되지 않은 즉흥적인 몸부림으로 범람하고자 하는, 비정상이 정상으로 인식되기 위해 싸우는 그들의 외침이 드러난다. 

 

이우성(1983-) 작가의 ‘반짝반짝 빛나는’(2016) 작품 속 밤하늘 별들이 빛나고 있다. 미디어로 인한 노출로 소수자 커뮤니티가 점점 더 가시화되고 일반 사회에 수용되는 오늘이 있기 전까지, 수 십 년간 검열과 단속을 피해 밤하늘 아래 조심스럽게 모였던 선두 주자들이 있었다. 이 도시가 낯설어했던 밤에 모여든 이들이 있었고 또 그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이우성의 별들은 그 밤들을, 그 어둠을 지켜왔고 함께한 이들 그 자체다.

 

제3막: 나는 여기 있다

 

이해민선(1977-) 작가의 강풍 연작의 평면 안에는 찢어진 벽보 조각들을 붙여 세운 '나는 여기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 그들, 그리고 그들>을 매듭짓는 이해민선의 작품은 약하고 취약한 개인의 존재를 세우고 외치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문구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고, 이 전시와 그 안의 작품들을 비추는 거울이자 관계를 잇는 선언이기도 하다.

 

 

 

 

기획 

이정식 

김강석 

 

디자인

이주명

 

*이정식 작가는 서울에서 시각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23년부터 연희동에 위치한 ‘10의 n 승’ 전시 공간에서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에스터쉬퍼 서울 갤러리에서 5월에 개최한 ‘불타는 집’ 전시를 기획하였다.

 

[1] 오인환 작가노트

[2] 이시마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