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안홀트(65)는 가족을 위해 꿈을 포기했다. 영국 왕립미술학교에서 석사를 마쳤지만 데본의 시골에서의 삶을 택했다. 아이들을 키우고,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동화작가로 200여권의 책을 펴낸 남편 로렌스 안홀트의 책에 삽화를 그렸다. 평생 그림은 포기하지 않아 집에는 수십년의 작업이 쌓였다.
모성애, 가족, 자연 등을 주제로 몽환적인 이미지들을 화폭에 채워온 이 그림들이 수십년만에 빛을 보게 됐다. “내가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가장 존경하는 화가는 엄마”라고 고백한 유명 작가가 된 아들 톰 안홀트 덕분에 늦깍이 작가로 데뷔한다. 코펜하겐 마카엘안데르센갤러리 등에서 몇차례 그룹전에만 참가했던 이 늦깍이 작가의 개인전이 놀랍게도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2021년 학고재 개인전으로 방한한 톰이 초이앤초이 갤러리 최선희·최진희 대표에게 어머니를 작가로 추천하면서 첫 개인전을 기획하게 됐다.
서울 초이앤초이에서 개인전 ‘사랑, 인생, 상실’이 6월 24일까지 이어진다. 20여점의 신작이 소개된다. “나는 화가로서 사람들이 나의 그림을 보며 정신적인 충만함을 얻고 행복감을 느끼기를 바란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그림은 유난히 따스하다. 몽환적인 그림 속에서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사람보다 큰 식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아랍풍 문양이 인물을 감싸안기도 한다.
작가가 영향을 받은 앙리 마티스나 마르크 샤갈을 연상시키는 화풍으로 데본의 시골길을 걸으며 관찰한 사람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 가족과 지인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TV 뉴스에 나오는 피난민 가족의 삶과 가족을 잃고 상심에 빠진 이들의 모습도 연민어린 모습으로 캔버스에 그려냈다. 전시를 기획한 톰 안홀트는 “달콤한 물감 자국들이 자아내는 개인적인 서사와 소중한 순간들, 한없이 베풀 줄 아는 사람, 관대한 화가만이 보는 이에게 이렇게도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추천했다. 첫 한국 개인전 ‘낙화’를 통해 저무는 꽃의 그림을 선보였던 톰 안홀트는 이번 전시에도 꽃을 그린 정물화 4점을 1층 전시장에 나란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