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앤초이 갤러리는 독일 뒤셀도르프를 거점으로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전원근 작가의 개인전 ‘식물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선보인다.
전시는 1월 12일부터 2월 24일까지 초이앤초이 갤러리 서울 (서울시 종로구 팔판길 42, 03054)에서 마련된다.
전원근의 작업은 수행이다. 빨강, 노랑, 초록과 파랑. 네 개의 색상만을 가지고 완성되는 작가의 작품은 지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 install shot. Wonkun Jun, Untitled, 2021, Acrylic on canvas, 100 x 80 cm/초이앤초이 갤러리 서울 © 김중건
이 네 가지 색상 외 특정 색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합과 시도를 거치고, 팔레트가 아닌 캔버스 표면에서 섞이는 색들은 한 획의 붓질이 마르기까지 기다리고 관찰하는 과정이 필요하여 이 모든 노고와 기다림이 결정점에 다다를 때 즈음 이미 한 해가 지나가기도 한다.
미니멀리즘 또는 기하학적 추상에 기반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말레비치 또는 데 스틸의
철학적인 이상과는 달리 수백 번에 걸친 붓질과 마르기, 닦아내기, 그 위에 또다시 시작되는
붓질은 마치 불교 신도의 삼천 배를 보는 듯하여, 오랜 수행과 인내심이 중심에 있는 한국의
단색화에 가깝다.
유럽에서 25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물고 있지만,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동양적인 것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서사를 담아내는 작가의 작품은 자기 자신의 기억 속 파편의 일부를 색으로 표현하며 시작되고, 이러한 기억들은 작가의 유년기를 거슬러 역사의 잔재들로 넘어간다.
작가는 자신의 주기적으로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도시에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들, 그리고 끊임없이 변해가는 대도시의 모습들을 채집하고 작품에 새긴다. 이러한 작가의 작품 한 점 한 점은 개인적 경험을 담은 자화상이자, 우리의 역사를 담은 기록이며, 보는 이를 비추는 거울이다.
기억과 경험을 축적하며 그려지는 전원근의 그림은 따라서 그 과정 또한 결과물만큼이나 중요하다. 언뜻 보기에는 흰색, 붉은색, 푸른색 등 단순히 한 가지 색상만으로 그려진 듯 보이는 작품의 가장자리에도 오랜 시간 여러 겹의 색을 입히며 기다린 작가의 흔적이 다양한 색채로 스며들어 있다. 시간의 잔재가 쌓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작업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1 년 동안 작업실 바닥에 자리 잡고 있던 물감을 머금은 천이 한 해를 함께한 작품들 사이 자리 잡는다.
작가는 창가의 화분에 자리 잡은 식물을 보며 어떠한 동질감을 느낀다. 식물은 소리치기보다는 색감, 후각과 오감 등 조용하고 여린 언어로 자신을 알린다. 작가의 작업 또한 겉으로 화려하거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아닌 꾸준한 노력과 연륜을 기반한다. 계절의 흐름에 순응하고 화분에 물을 주듯 물감을 캔버스에 더하며 그려지는 전원근의 식물은 그 만의 언어로 조용히 말을 건다.
그 말을 들어주는 관객 또한 정원을 가꾸듯 자기 자신만의 언어로 그림과 대화를 나눠본다.
<작가노트>
정신 상태, 감정과 기억 같은 내면적인 영역을 다루는 전원근은 색을 겹겹이 쌓아 올리고 지우는 작업을 수 반복한다. 오랜 작업 후 완성된 작품은 기하학적 추상 또는 단색화 형태의 모습으로 작업을 하며 계속되었던 작가 내면의 정신적 고뇌와 감정의 기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가의 내면에 자리잡은 기억과 감정의 파편은 빨강, 노랑, 초록 그리고 파란색을 통해 구현된다.
이 4 가지 색상 외 특정 색을 구현하기 위해 수 많은 조합과 시도를 거치고, 팔레트가 아닌 캔버스 표면에서 섞이는 색들은 한 획의 붓질이 마르기까지 기다리고 관찰하는 과정이 필요하여 일 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작가 약력>
전원근 (한국, 1970 년 출생) 작가는 서울 추계예술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헬무트 페데레 교수의 마이스터 쉴러로 수석 졸업했다. 그는 ’Die Insel’ (Galerie The Box, 뒤셀도르프, 2022), ‘Wonkun Jun’ (갤러리 LVS, 서울, 2022), ‘Dear Lil’ (Gallery shoobil, 앤트워프, 2021), and ‘사이’(영은미술관, 광주, 2016) 등 40 여 차례 개인전을 가졌고, ‘XX -20 Jahre’ (Kunstraum no.10, 뮌헨글라드백, 2021), Farbe auf Papier (Galerie Klaus Braun, 슈투트가르트, 2021), ‘영은지기 기억을 잇다’ (영은미술관, 광주, 2020), and ‘장욱진을 찾아라’
(장욱진미술관, 양주, 2020)등 다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가의 작품은 국립 현대 미술관 정부미술은행 (서울), 쿤스트팔라스트 미술관 (뒤셀도르프), NRW 미술 컬렉션 (독일), 영은미술관(광주), 건국대학교 의료원 (서울), 경희대학교 (서울), 마크 로스코 아트센터 (라트비아), 가일도르프 시청 (독일) 등 다양한 개인 및 기관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전원근은 현재뒤셀도르프에서 거주하며 작업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