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구석에서 홀로 낚시하는 어두운 존재. 텅 빈듯 하얀 롤러코스터가 화면을 가득 채웠는데 그 존재에 자꾸 눈길이 간다. 롤러코스터 레일은 무한대 기호(∞)를 연상시킨다. 광활한 우주 속에 분홍 꽃이 가득차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공상과학(SF)소설의 한 장면 같은 이 유화는 독일 작가 필립 그뢰징어(50)의 'Loop quantum gravity'(2022)다.
극지방을 탐험하는 모험가와 괴이한 기계 구조물, 무지개 같은 스펙트럼이 자주 등장해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 등 다양한 양식이 섞여 있는 모양새다. 오일이나 아크릴물감, 파스텔, 스프레이 페인트 등 다양한 재료로 알록달록 화려하게 표현되는 색깔에서 배어나오는 우울감이나 절망의 정조가 복합적이다. 옛 동독에서 영국 출신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와 모국을 그리워하던 어머니의 우울감을 목격하면서 외동으로 자라났다. 17세때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큰 사건을 겪고 과도한 낙관주의에 사로잡혔던 세상의 기억도 그림에 녹아있다.
한국에 오자마자 판문점부터 달려간 작가는 "임진각과 판문점에 서 보니 어릴때 분단의 기억, 알 수 없는 긴장된 분위기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며 그 기억을 빨리 그림으로 담고 싶어했다. 작가 그림 속에는 밝은 존재와 어두운 존재가 함께 나타나 탄생과 죽음 등 양면성을 보여준다. 양팔을 뻗는 존재들도 내보내거나 놓아주는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잡기 위해 뻗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또한 삶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동작이다.
초이앤초이갤러리에서는 'LONELINESS'란 주제로 고독과 외로움이 어떻게 다른 생명력의 원천이 되는지 보여주는 작품을 모았다. 호리아트스페이스와 아이프라운지에서는 'CURIOSITY'를 주제로 인간적 감성의 첫 출발점인 호기심이 자유로운 해석과 흥미로운 재미를 선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테판 베르크 본미술관 관장은 "우주공간은 작가에게 현실세계의 제약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며 "안정적인 기반을 잃어버린 세상을 그리는 그뢰징어의 작업도 복잡한 코드와 은유적 상징들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함을 논한다"고 밝혔다.